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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비대면보다 발품… ‘정보 불평등’에 감염 위험 내몰려 [언택트 시대, 소외된 노인들]

입력 : 2020-10-03 08:00:00 수정 : 2020-10-03 11: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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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질병정보 취약한 디지털 이민자
고령층 정보화 수준 일반인 64% 불과
마스크 구매부터 생필품 장보기 등
온라인 활용 비대면 생활 엄두 못내
디지털 기기·정보 활용 삶에 큰 영향
연구결과 미이용자 우울증 가능성 높아
'포스트 코로나 시대’ 격차 해소 시급
#1. ‘자주 산 상품-상품선택-구매하기-바로구매-결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하루 확진자 수가 세 자릿수를 이어가던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에 사는 직장인 이모(27)씨에게 생수와 식료품을 사는 일은 다섯 번의 터치면 충분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마스크를 벗은 이씨는 스마트폰 쇼핑 앱(애플리케이션·응용소프트웨어)에 저장된 구매 내역과 결제·배송 정보들을 활용해 침대에 누워 3분 안에 장보기를 끝낸 것이다. 그는 “집 근처 직장까지 걸어 다니는 것을 빼고는 외출할 일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2. “인터넷 쇼핑? 우린 그런 거 못 하는 거 알잖아.”

같은 날 오전 9시쯤. 경기 의정부시에 거주하는 권모(73) 할머니는 점심 찌갯거리를 사기 위해 인근 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이같이 말했다. 과일 상인이 마스크를 턱에 걸친 채 “맛있는 사과 싸게 팝니다”를 외치는 시장 초입에서 권 할머니는 얼굴과 밀착하도록 마스크 윗부분을 연신 꾹꾹 눌렀다. 코로나19로 인파가 줄긴 했지만, 여전히 점포 앞에는 추석에 쓸 차례용품을 사러 나온 사람들로 붐볐다. 권 할머니는 “스마트폰으로 (물건을) 살 수 있다고는 들었는데, 사용할 줄 모르니 코로나가 심할 때도 그냥 시장에 나온다”고 말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코로나19 사태 속에 ‘정보통신기술(ICT)을 얼마나 잘 활용할 수 있느냐’에 따라 새로운 위협에 노출되는 빈도에 격차가 생길 수 있음을 이씨와 권 할머니, 두 사람의 사례가 보여준다. 디지털사회의 효용성은 높아졌지만, 역설적으로 이 기술을 활용하지 못하는 정보취약계층에게는 ‘정보 불평등’이 심화할 수밖에 없다는 구조적 문제가 여실히 드러난다.

◆노인에게 비대면 생활은 ‘남 얘기’

코로나19는 60대 이상 고령층에 더욱 치명적이지만, 온라인 기술을 활용한 비대면 생활은 다른 계층에 비해 확연히 떨어지는 상황이다.

29일 한국정보화진흥원의 ‘2019년 디지털 정보 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일반 국민 대비 고령층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은 64.3%에 불과하다. 같은 정보취약계층으로 분류되는 농어민과 저소득층, 장애인, 결혼이민자, 북한이탈주민 등과 비교해도 가장 낮다.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디지털 기기를 보유한 고령층의 수는 늘어났지만, 노인들은 기기를 이용해 자신에게 유리한 방면으로 활용하는 데에는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조사 결과, 고령층의 유·무선 정보기기 보유 여부 등을 측정하는 ‘디지털 정보화 접근 수준’은 90.6%에 달했지만, 고령층의 컴퓨터와 모바일 기기 이용능력 등을 나타내는 ‘디지털 정보화 역량 수준’은 51.6%, 인터넷 심화 활용 정도 등을 측정하는 ‘디지털 정보화 활용 수준’은 63.9%에 그쳤다.

코로나19 사태 초기 스마트폰 활용이 어려운 노인일수록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의 확진자 현황 및 이동 경로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마스크 대란’ 당시에도 스마트폰을 통해 약국별 마스크 재고 정보를 얻은 젊은층과 달리, 노인들은 약국 앞에 줄을 서 긴 시간을 기다리는 등 정보취약계층일수록 감염위험에 노출되기 쉬운 상황이 곳곳에서 연출됐다.

서울 종로구에서 혼자 거주한다는 심모(70)씨는 “올해 3월쯤 정부가 마스크를 싸게 판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약국에 갔다가 길게 늘어진 줄에 황급히 자리를 뜬 경험이 있다”며 “마스크 사려다 코로나에 걸릴 판이라 그냥 집으로 되돌아왔다”고 말했다.

충북종합사회복지센터가 최근 충북지역 노인 23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절반가량(48.5%)이 공적마스크 구입에 대한 정보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껏 공적마스크를 구매해 본 경험이 없는 노인들(101명)은 그 이유로 ‘판매처를 모름’(30.9%)과 ‘대기 줄이 너무 길어서’(28.6%) 등을 꼽았다.

◆“디지털 격차가 ‘삶의 만족도’ 차이로까지”

코로나19 여파로 가속하는 ‘비대면 사회’에서 디지털 기기·정보의 활용 수준은 사회·경제적 격차뿐만 아니라 심리적 건강 상태 및 삶의 만족도 차이로까지 심화할 것으로 관측된다.

올해 6월 발표된 김세진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 부연구위원 연구팀의 ‘노인의 정보기기 이용 유형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정보기기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미이용형’ 노인일수록 우울 증상을 보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는 ‘2017년 노인실태조사’를 통해 확보된 전·후기 노인 1만73명의 응답 결과를 바탕으로 진행됐다.

같은 달 송인욱 대구사이버대 교수(사회복지학) 연구팀은 노인 396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통해 ‘디지털 정보 활용능력이 높은 노인일수록 삶의 만족도가 높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고, 지난 7월 이홍재 안양대 교수(공공행정학) 연구팀은 디지털 기기를 통한 정보의 질적 활용 여부가 노인의 삶의 만족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기호 보사연 부연구위원은 “지금까지의 정보격차가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차이에서 오는 불편함이었다면, 모든 것이 지능정보기술로 연결되는 사회에서 정보를 활용하지 못한다는 것은 경제·사회·문화적 격차를 의미하며 여러 불평등을 야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디지털 정보의 질적 활용 여부에 따라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한다는 점이 드러난 만큼 ‘포스트 코로나 시대’ 논의에 노인의 정보격차 해소 방안도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홍재 교수는 “이제는 (디지털 정보의) 이용 성과에 따라 노인들의 삶의 만족도 등에도 차이가 발생한다는 점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면서 “디지털 기기 보유 여부나 활용능력과 관련된 논의를 넘어서 노인들의 디지털 이용 성과를 높일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준화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일정 수준까지는 ICT에 대한 접근과 활용이 보편적인 권리가 될 수 있도록 보다 적극적인 정보격차 해소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강진 기자 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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